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이자 묘역이 위치한 곳입니다. 봉하마을은 난생 처음입니다.

봉하마을 입구 길가에는 노란색 바람개비가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태극기 오른쪽 위로 그 '부엉이바위'가 보입니다. 곧 이 마을에서 '작은음악회'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펄럭이더군요.
시민들이 참배 후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저는 고인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갖추었습니다. 한참 동안 묵념도 하고 방명록에 서명도 했습니다.관리소에서 켜 놓은 잔잔한 음악과 바람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습니다.
묘역 바닥에는 고인을 잊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글귀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처럼 되어 버린 글귀가 '작은 비석' 앞 철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철판은 녹이 슬었는데, 이 녹은 철판을 부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코팅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후에는 암갈색으로 변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 맞을 것 같은데, 방송인 '김제동'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바닥돌을 발견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우리 가슴 속에 그 분의 한조각 한조각을 퍼즐처럼 맞추어 심장이 뛸 때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김제동-" 이라고 써 있네요.
묘역 위로 '부엉이 바위'가 보입니다. 이상하게도 참배를 마친 시민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걸어나오네요. 바닥돌에 쓰인 글들을 읽으며 걷나 봅니다.
부엉이바위의 생김새가 참 기괴합니다. 풍기는 기운도 요상합니다. 솔직히 저는 생가나 묘역보다 저 부엉이바위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저 부엉이바위는, 마치 살아있는 듯 했거든요. 하여간 저 바위는 유쾌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생전에 찾았더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저 산은, 기운이 참 묘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딱 네번 직접 봤습니다.
처음은 1988년 6월이었죠. 부산역앞 광장에서 6월항쟁 1주기 계승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구경 삼아 집회에 갔다가 연사로 나온 노무현 의원을 봤습니다. 저는 어린 학생인지라 연단 바로 앞에 앉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연설 중에 일부 대학생이 던진 계란에 노 의원이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저도 파편을 맞을 뻔 했습니다. 집회장은 순간적으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는 계란세례를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저에게 왜 이렇게 하십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왜 저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저는 당시 노무현 의원의 '당당하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런 정치인도 있구나" 싶었거든요. 당시 일부 학생들이 노 의원에게 계란을 던진 이유는, 노 의원이 '인권변호사'에서 '보수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에 대한 항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두번째는, 2002년 대통령 후보직을 두고 경선을 치를 때입니다. 막 광주 경선을 끝냈을 때였습니다. 여의도역 근처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오찬이 있었습니다. 오찬장에서 노무현 후보는 "제가 반드시 이깁니다.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그는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저 사람 진짜 대통령 될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밀려왔습니다.
세번째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인 2003년 2월 중순경이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인사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찾았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서울 용산구 한국노총 사무총국을 찾은 노 대통령은 "여론의 장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경제계가 세다. 언론의 논조나 부수만 봐도 비교가 안 된다. 신문의 컬럼, 생산되는 논문 숫자를 봐도 압도적으로 경제 성장 논리가 우세하다. 그래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 지, 그리고 사회적 세력 균형을, 그런 뜻이다. 개별적으로 구체적 적용도 관심이지만 5년간 사회적 불균형과 가치 주장자들 간의 힘의 불균형을 시정할 것이다. 그게 균형이 이뤄졌을 때 정부나 대통령의 개입이 없이도 해결될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네번째도 역시 대통령 취임 전인 2003년 2월 말경이었습니다. 당선 직후 광화문 외교통상부 빌딩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을 며칠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죠. 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 수립 등의 임무를 마치고 해산하기 위해, 조촐한 리셉션을 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저도 떡이나 얻어먹어볼까 싶어서 엉거주춤 그 자리에 갔습니다.
그 날 정태인 인수위원은 약간 취기가 올라있었습니다.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죠. 아마 정 위원은 그 날 경제자유구역 문제로 다른 인수위원들과 가벼운 마찰 또는 언쟁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큰 소리도 내면서 약간 소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런 정 위원을 봤으면서도 못 본 척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기슭 봉하마을에서, 굴곡 많았던 이승에서의 짐을 내려놓고 깊은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1년하고 석달째입니다.
바람결에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묘역 앞에 한참동안 눈을 감고 서 있었습니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소리였습니다......
봉하마을 입구 길가에는 노란색 바람개비가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태극기 오른쪽 위로 그 '부엉이바위'가 보입니다. 곧 이 마을에서 '작은음악회'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펄럭이더군요.
부엉이바위의 생김새가 참 기괴합니다. 풍기는 기운도 요상합니다. 솔직히 저는 생가나 묘역보다 저 부엉이바위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저 부엉이바위는, 마치 살아있는 듯 했거든요. 하여간 저 바위는 유쾌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생전에 찾았더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저 산은, 기운이 참 묘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딱 네번 직접 봤습니다.
처음은 1988년 6월이었죠. 부산역앞 광장에서 6월항쟁 1주기 계승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구경 삼아 집회에 갔다가 연사로 나온 노무현 의원을 봤습니다. 저는 어린 학생인지라 연단 바로 앞에 앉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연설 중에 일부 대학생이 던진 계란에 노 의원이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저도 파편을 맞을 뻔 했습니다. 집회장은 순간적으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는 계란세례를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저에게 왜 이렇게 하십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왜 저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저는 당시 노무현 의원의 '당당하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런 정치인도 있구나" 싶었거든요. 당시 일부 학생들이 노 의원에게 계란을 던진 이유는, 노 의원이 '인권변호사'에서 '보수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에 대한 항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두번째는, 2002년 대통령 후보직을 두고 경선을 치를 때입니다. 막 광주 경선을 끝냈을 때였습니다. 여의도역 근처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오찬이 있었습니다. 오찬장에서 노무현 후보는 "제가 반드시 이깁니다.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그는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저 사람 진짜 대통령 될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밀려왔습니다.
세번째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인 2003년 2월 중순경이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인사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찾았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서울 용산구 한국노총 사무총국을 찾은 노 대통령은 "여론의 장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경제계가 세다. 언론의 논조나 부수만 봐도 비교가 안 된다. 신문의 컬럼, 생산되는 논문 숫자를 봐도 압도적으로 경제 성장 논리가 우세하다. 그래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 지, 그리고 사회적 세력 균형을, 그런 뜻이다. 개별적으로 구체적 적용도 관심이지만 5년간 사회적 불균형과 가치 주장자들 간의 힘의 불균형을 시정할 것이다. 그게 균형이 이뤄졌을 때 정부나 대통령의 개입이 없이도 해결될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네번째도 역시 대통령 취임 전인 2003년 2월 말경이었습니다. 당선 직후 광화문 외교통상부 빌딩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을 며칠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죠. 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 수립 등의 임무를 마치고 해산하기 위해, 조촐한 리셉션을 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저도 떡이나 얻어먹어볼까 싶어서 엉거주춤 그 자리에 갔습니다.
그 날 정태인 인수위원은 약간 취기가 올라있었습니다.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죠. 아마 정 위원은 그 날 경제자유구역 문제로 다른 인수위원들과 가벼운 마찰 또는 언쟁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큰 소리도 내면서 약간 소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런 정 위원을 봤으면서도 못 본 척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기슭 봉하마을에서, 굴곡 많았던 이승에서의 짐을 내려놓고 깊은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1년하고 석달째입니다.
바람결에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묘역 앞에 한참동안 눈을 감고 서 있었습니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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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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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바위는 부엉이바위가 아니라 사자바위입니다.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